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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2026년 식음료·건강기능식품 리콜 동향과 리스크 관리

들어가며

식품 리콜은 더 이상 드문 사고가 아닙니다. 원료 한 가지의 오염이 수십 개 브랜드의 회수로 번지고, 표시 하나의 누락이 전량 회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2026년 한 해 국내외에서 발생한 식음료·건강기능식품 결함 및 회수 사례를 정리하고, 이것이 제조·유통 기업의 리스크 관리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사례: 곰팡이 독소, 식중독균, 함량 미달

가장 최근의 사례는 견과류에서 나왔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9월 17일 경기도 소재 A사가 소분·판매한 국산 볶음땅콩 일부를 판매 중단하고 회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제품에서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이 기준치를 넘어 검출된 데 따른 조치이며, 회수 대상 제품의 생산량은 총 423kg입니다.

여름철에는 미생물과 표시 위반 사례가 집중되었습니다. 식약처 수입식품정보마루 공지에 따르면 7월 29일 식중독균이 검출된 조미건어포, 7월 31일 3-MCPD가 초과 검출된 수입 간장과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표시하지 않은 소스, 8월 5일에는 알레르기 유발물질 미표시 즉석조리식품이 잇달아 회수되었습니다. 앞서 4월에는 경기도 소재 B사가 제조·판매한 체중조절용 조제식품에서 식중독균인 바실루스 세레우스가 검출되어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건강기능식품에서는 ‘효능의 결함’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식약처가 가정의 달을 앞두고 실시한 점검에서 홍삼, 프로바이오틱스 등 국내 유통 건강기능식품 202건을 수거·검사한 결과, 오메가3 및 복합영양소 제품 2건이 표시된 함량 기준에 미달해 회수·폐기 조치되었습니다. 6월 발표된 후속 점검에서도 미국산 오메가-3 제품 1건이 붕해시험 부적합 판정을 받아 회수·폐기가 요청되었고, 통관단계 정밀검사 244건 중 3건이 기능성분 등 함량 부족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회수 명령이 곧 회수 완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소 오래된 자료이지만,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위해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명된 99개 제품의 총 출고량은 15만9,832kg에 달했으나 실제 회수량은 31.0%인 4만9,481kg에 그쳤습니다. 회수되지 못한 나머지 약 70%는 그대로 소비자의 손에 남게 되며, 기업 입장에서는 이것이 잠재적 배상책임으로 남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에 정부는 정보 전달 체계를 보강하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2026년 하반기 업무계획을 통해 건강기능식품에도 QR을 도입해 의약품 병용 섭취 주의사항 등을 안내하고, 행정안전부 ‘국민비서 구삐’ 서비스를 통해 위해식품 회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8월)고 밝혔습니다.

해외 사례: 역대급 리콜 건수와 감독 공백

미국의 상황은 보다 심각합니다. AP통신이 보도한 FDA 수치에 따르면 이번 연방 회계연도 중 발표된 식품 리콜은 480건을 넘어섰으며, 이는 이미 직전 5개 회계연도 중 4개 연도를 웃도는 규모입니다. 같은 기간 FDA의 해외 식품시설 점검은 2019년 대비 약 35% 감소했고, FDA 인력은 2024년부터 2026년 사이 약 22% 줄었습니다. 리콜은 늘고 감독은 줄어든 것입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기업 스스로의 품질관리와 재무적 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분유였습니다. 미국의 한 유기농 분유업체(이하 C사)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오염 가능성을 이유로 시중에 유통 중인 분유 전 로트를 자발적으로 회수했습니다. FDA와 CDC는 2026년 6월 12일 회사에 연락해 해당 분유를 섭취한 영아의 보툴리누스증 3건을 통보했고, 세 영아는 캘리포니아·워싱턴·펜실베이니아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후 FDA와 CDC는 최종적으로 3개 주에서 4건의 영아 보툴리누스증을 확인했으며, 4명 모두 입원했으나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해당 제품이 미국 전체 분유 판매량의 1% 미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점유율이 낮다고 해서 리콜의 충격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이 존속하기 어려운 수준의 타격은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찾아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뉴질랜드의 한 유제품 기업(이하 D사)도 미국 시장에서 회수에 나섰습니다. D사는 미국 판매용 분유 3개 배치를 세레울라이드 검출을 이유로 자발적 회수했습니다. 세레울라이드는 바실루스 세레우스 일부 균주가 생성하는 내열성 독소로, 뜨거운 물로 분유를 타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 사안은 단일 기업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3일 여러 국제 유통 브랜드의 배치에서 세레울라이드가 검출된 이후 분유 등 제품에 대한 다국가 회수가 시작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원료 공급망을 타고 번지는 리콜도 두드러졌습니다. 미국의 한 음료 제조대행업체(이하 E사)는 여러 브랜드로 판매된 스페셜티 음료 믹스를 살모넬라 오염 가능성으로 대거 회수했는데, 원인은 원료로 쓰인 오염된 탈지분유였습니다. 건강식품 원료 분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 온라인 식품업체(이하 F사)는 FDA 검사에서 유기농 그린 파우더 샘플에서 살모넬라가 검출되자 케일·밀싹·스피루리나 등 그린 파우더 제품을 회수했고, 또 다른 업체(이하 G사)의 유기농 모링가 잎 분말 회수는 2026년 모링가 분말 관련 연방 식중독 조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냉동 블루베리 관련 E. coli O145:H28 집단발병 조사는 17명의 환자와 6명의 입원으로 이어졌고, 회수 범위는 대형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혼합 베리 제품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사례가 말하는 것: 리콜 리스크의 세 가지 특징

첫째, 원인은 내 공장 밖에 있을 수 있습니다. 탈지분유 하나가 음료 믹스 여러 브랜드를 멈춰 세웠고, 세레울라이드는 국경을 넘어 다수 분유 브랜드의 회수로 번졌습니다. 완제품 제조사가 원료 결함의 책임과 비용을 함께 떠안는 구조입니다.

둘째, 피해가 없어도 비용은 발생합니다. C사는 회수 당시 자사 분유에서 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D사 역시 보고된 환자가 없는 상태에서 회수를 단행했습니다. 예방적 회수라 하더라도 물류, 폐기, 소비자 환불, 매장 재고 철수, 광고 중단에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 됩니다.

셋째, 건강기능식품은 ‘함량 미달’ 자체가 결함입니다. 오염이 없더라도 표시된 기능성분이 부족하면 회수 대상이 됩니다. 기능성을 판매하는 산업에서 품질 편차는 곧 리콜 리스크입니다.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리콜 비용은 흔히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제품 결함으로 소비자에게 신체적·재산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의 배상책임으로, 생산물배상책임보험(PL보험)이 대응합니다. 다른 하나는 피해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결함 제품을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는 일반적인 PL보험의 담보 범위 밖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수 비용, 폐기 비용, 재생산 비용, 매출 손실, 위기관리 컨설팅 비용 등을 다루는 것이 리콜보험(제품회수비용보험) 또는 오염제품보험입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대부분 후자의 영역에서 비용이 먼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회수가 시작되었고, 원료 공급사의 결함이 완제품 제조사의 회수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식음료·건강기능식품 기업이라면 다음 사항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현재 가입한 PL보험이 회수 비용을 담보하는지, 별도의 리콜보험이 필요한지
  • 원료 공급사와의 계약에 결함 책임 및 회수 비용 분담 조항이 있는지
  • 수출 제품의 경우 현지 규제당국의 회수 명령과 해외 소송에 대응 가능한 담보 지역이 설정되어 있는지
  • 로트 추적, 회수 연락망, 위기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맺으며

리콜은 품질관리의 실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속한 회수는 오히려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책임 있는 대응입니다. 문제는 그 책임을 감당할 재무적 체력입니다. 리콜 건수는 늘고 감독 공백은 커지는 지금, 회수 결정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준비가 곧 브랜드를 지키는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SBS Biz, 「식약처, ‘아플라톡신 초과 검출’ 국산 볶음땅콩 회수」(2026.9.17)
  •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 보도참고자료(2026.7.29~8.5)
  • 데일리팜, 「다이어트 식품에서 식중독균 검출…식약처, 긴급 회수」(2026.4.14)
  • 메디팜헬스뉴스, 「건강기능식품 허위 과대 광고 ‘여전’」(2026.4.30)
  • 라이브스뉴스, 「식약처,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업체 2,785곳 점검」(2026.6)
  • 데일리팜, 「건기식 부작용 늘어나는데 위해제품 회수율 30%」(2020.10.13)
  • 다자비 보험매거진, 「식약처, 2026년 하반기 주요 업무 보고」
  • Black America Web, “20 Major Food Products Recalled in 2026”(2026.9.21)
  • 미국 FDA 분유 리콜 공지(2026.5~6)
  • Newstalk ZB, 미국 판매용 분유 회수 관련 보도(2026.5.4)


2026년 10월 4일 일요일

결함은 이제 코드에서 나온다: 2026년 하반기 제조업의 품질·리콜·규제 리스크

자동차, 가전, 로봇이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제품이 되면서 결함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부품이 부러지는 대신 화면이 꺼지고, 센서가 오판하고, 업데이트가 제품을 멈춥니다. 여기에 올해 9월 유럽연합(EU)의 사이버복원력법(CRA) 보고 의무가 시작되었고, 12월에는 EU 제조물책임 지침이 적용됩니다. 품질 문제가 곧 규제 문제이자 배상 문제가 되는 시기입니다.

소프트웨어 결함과 대규모 리콜

올해 미국에서 나온 현대자동차의 두 사례가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5월에는 전방 카메라 소프트웨어 오류로 전방 충돌방지 보조 시스템이 조기에 작동해 브레이크가 예기치 않게 걸릴 수 있다는 이유로 42만 1,078대가 리콜되었습니다. 이어 2025~2026년형 투싼 9만 6,310대가 주행 중 계기판이 간헐적으로 재부팅되어 속도계와 경고등이 일시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문제로 리콜 대상이 되었습니다.

두 건 모두 부품 교체가 아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조치되며, 투싼의 경우 커넥티드 서비스 가입 차량은 무선 업데이트(OTA)로 수정됩니다. OTA는 리콜 비용을 낮추는 수단이지만, 하나의 코드가 수십만 대에 동시에 배포되는 구조에서는 결함의 범위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배포 과정 자체의 오류가 제품을 멈추게 할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같은 위험은 자동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온디바이스 AI가 탑재된 로봇청소기와 협동로봇의 센서 오판, 전력 관리 알고리즘 오류로 인한 배터리 과열처럼 소프트웨어 문제가 물리적 사고로 이어지는 복합 결함이 대표적입니다.

강화되는 글로벌 규제

첫째, EU 사이버복원력법입니다. 9월 11일부터 제14조 보고 의무가 적용되었습니다.

  • 대상은 실제 공격에 악용되고 있는 취약점과 중대한 보안 사고입니다. 취약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신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인지 후 24시간 안에 조기 경보, 72시간 안에 상세 통지, 이후 최종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 보고는 EU 사이버보안청(ENISA)의 단일 보고 플랫폼에 영어로 제출합니다.
  • 이미 EU 시장에 판매 중인 제품에도 적용됩니다.
  • 위반 시 최대 1,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연 매출의 2.5% 중 큰 금액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보안 설계 등 주요 요구사항은 2027년 12월 11일부터 전면 적용됩니다.

둘째, EU 제조물책임 지침 개정입니다. 12월 9일부터 적용되며, 소프트웨어가 '제품'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무과실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비상업적으로 개발된 오픈소스는 제외되고, 개인 데이터의 파손·손상도 배상 대상 손해에 들어갑니다. 재보험 중개사 하우든리는 이 개정이 보험사의 제조물책임 위험 노출을 크게 바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셋째, 자동차 사이버보안 규제입니다. 국내에서도 사이버보안 관리체계(CSMS) 인증이 법제화되어, 신규 차종은 2025년 8월부터, 기존 양산 차종은 2027년 8월부터 법을 준수해야 판매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르노코리아·지리·폴스타가 인증을 공동 신청하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영업과 경영에서 나타나는 2차 리스크

24시간과 결재 문화의 충돌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은 보안팀이 문제를 발견하면 제품팀이 영향 범위를 확인하고 경영진이 승인해 보고하는 체계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다단계 결재로 며칠이 걸리는 조직에서는 기술적으로 대응을 마치고도 기한을 넘길 수 있습니다.

공급망도 변수입니다. 공급사가 사고를 늦게 알리면 제조사 역시 24시간 기한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자사 제품에 어떤 구성요소가 들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제조사가 많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픈소스와 협력사 모듈의 결함에 대한 법적 책임은 결국 완성품 제조사에 귀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신뢰와 계약의 문제입니다. 소프트웨어 리콜이 반복되면 안전성에 대한 브랜드 신뢰가 손상되고, B2B 납품에서는 작동 불능과 납기 지연에 따른 클레임과 지체상금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인사이트

첫째, 24시간은 기술이 아니라 권한의 문제입니다. 누가 보고를 결정하는지 사전에 위임해 두지 않으면 기한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보고 판단과 조치 과정을 시간순으로 기록해 두는 것도 향후 점검에 대비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공급계약을 다시 보셔야 합니다. 협력사의 통지 기한, 소프트웨어 자재명세서(SBOM) 제공, 결함 발생 시 비용 분담을 계약에 명시하지 않으면 책임은 완성품 제조사에 집중됩니다.

셋째, 보험의 공백을 점검하실 시점입니다. 소프트웨어 결함은 생산물배상책임, 리콜(회수비용), 사이버보험의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신체·재물 손해 없이 제품이 작동하지 않는 손실, 데이터 손상, OTA 방식의 리콜 비용이 각 증권에서 담보되는지, 사이버 관련 면책 조항이 적용되는지 확인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과징금은 통상 보험으로 전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셔야 합니다.

2026년 9월 12일 토요일

리콜 건수는 그대로인데 회수 물량은 4.5배 — 2026년 상반기 미국 리콜 데이터 읽기

2026년 상반기 미국의 제품 리콜은 1,634건입니다. 전년 동기 1,636건과 사실상 같은 수치로, 세지윅(Sedgwick)의 미국 리콜 인덱스가 집계한 결과입니다. 다섯 개 산업 가운데 네 곳에서 건수가 줄었으니, 건수만 보면 달라진 것이 없는 반년입니다.

그러나 회수 대상 물량은 2억 1,125만 개에서 9억 4,115만 개로 346% 늘었습니다. 상반기만으로 이미 2025년 연간 총량을 넘어섰고, 2022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10억 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고의 횟수는 그대로인데 사고 한 건의 크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물량의 83%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에서 나왔습니다

의약품 리콜은 184건에서 177건으로 소폭 줄었습니다. 반면 회수 물량은 4,651만 개에서 4억 7,164만 개로 914.0% 늘어 18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제조·품질관리 기준(cGMP) 위반으로 인한 물량이 2억 1,435만 개였는데, 대부분 벤잘코늄 염화물 함유 제품 리콜 한 건에서 나왔습니다. 오염으로 인한 물량 1억 7,830만 개 가운데 1억 7,438만 개도 알코올 솜 리콜 한 건이었습니다.

가장 위험도가 높은 Class I 리콜은 14건으로 5년 내 최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량은 105만 개에서 1억 7,452만 개로 늘어 20여 년 내 최고 수준입니다.

의료기기도 같은 양상입니다. 리콜은 487건에서 462건으로 5.1% 줄었으나, 물량은 5,075만 개에서 3억 1,307만 개로 516.8% 증가해 5년 내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멸균 문제로 인한 물량이 1억 7,945만 개였고, 그중 1억 7,233만 개가 편의 키트 리콜 두 건이었습니다.

두 산업의 물량을 합치면 7억 8,471만 개로 전체의 약 83%입니다. 알코올 솜 한 건과 편의 키트 두 건, 이 세 건의 리콜만으로도 전체의 약 37%에 이릅니다.

소비재: 29년 만의 최고치

건수가 늘어난 산업은 소비재가 유일합니다.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리콜은 210건에서 289건으로 37.6% 증가해 29년 내 가장 높은 반기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물량도 1,685만 개에서 2,703만 개로 60.4% 늘었습니다.

품목별로는 정원·야외용품이 18건에서 48건으로 늘어 1위였고, 그릴 브러시 리콜 두 건이 1,340만 개를 차지했습니다. 위험 유형에서는 삼킴 사고가 5건에서 46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이 가운데 60.9%가 코인형·버튼형 전지, 30.4%가 자석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집행 강도도 높아졌습니다. CPSC는 화재 40여 건과 사망 1건에 연루된 에어컨의 결함을 보고하지 않은 기업에 800만 달러의 형사 벌금을 부과했고, 6월에는 다른 제조사에 850만 달러의 민사 제재금을 발표했습니다. 온라인 판매자에게 보낸 위험 제품 삭제 통지는 올해 들어 106,000건에 이릅니다. 7월 8일부터는 수입 소비재의 적합성 인증서를 통관 전에 전자 제출하도록 하는 eFiling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자동차: 건수는 6년 내 최저, 물량은 5년 내 최고

도로교통안전국(NHTSA) 리콜은 461건에서 431건으로 6.5% 줄어 6년 내 최저입니다. 반면 대상 차량은 1,109만 대에서 2,348만 대로 111.6% 늘어 5년 내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전기 계통 리콜은 93건에서 74건으로 줄었지만, 물량은 623만 대로 10년 내 최고였습니다. 견인 중 제동과 신호 기능이 상실될 수 있는 트레일러 통신 결함 리콜 한 건이 438만 대를 차지했습니다. 변속기 문제로 인한 단일 리콜도 139만 대 규모였습니다.

공급망 규제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NHTSA는 4월, 사고 12건과 사망 10명에 연루된 해외 제조사의 에어백 인플레이터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7월에는 미국이 USMCA를 현행대로 갱신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협정이 매년 재검토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승용차의 역내 부품 비율을 75%에서 82%로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식품: 유일하게 물량이 줄었으나 구조는 같습니다

식품의약국(FDA) 소관 식품 리콜은 266건으로 전년(270건)과 비슷했고, 물량은 8,457만 개에서 6,876만 개로 18.7% 줄었습니다. 물량이 감소한 유일한 부문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유리 혼입 조리식품 리콜 한 건이 1,907만 개, 색소 미표시 라면 리콜 한 건이 1,861만 개를 차지했습니다.

농무부(USDA) 소관 리콜은 더 극단적입니다. 건수는 24건에서 9건으로 62.5% 줄었는데, 회수 물량은 3,718만 파운드로 2,432.1% 늘어 10년 내 상반기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물질이 혼입된 닭고기 볶음밥 리콜 한 건이 3,699만 파운드였습니다.

규제 환경: AI와 관세

FDA는 4월, 제조 규정 준수를 AI에 과도하게 의존한 의약품 제조사에 사상 첫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해당 기업은 AI가 공정 밸리데이션의 필요성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FDA는 AI의 산출물을 권한 있는 사람이 검토하고 승인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통상 측면에서는 일부 의약품과 원료에 대한 100% 기본 관세가 7월 31일 발효되었습니다. 미국 내 생산 이전 협약을 승인받은 제조사는 20%로 낮출 수 있습니다.

기업이 읽어야 할 것

첫째, 리콜 리스크는 빈도보다 한 건의 규모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건수가 줄어든 네 산업 중 세 곳에서 물량은 두 배에서 열 배까지 늘었습니다. 과거의 사고 규모를 기준으로 설정한 리콜 비용 담보와 생산물배상책임보험의 한도가 지금도 충분한지 다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식품 리콜 한 건의 평균 직접 비용은 이미 1,000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둘째, 대형 리콜은 대부분 단일 공정이나 단일 공급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멸균, 오염, 제조 기준 위반, 이물질 혼입이 그 예입니다. 이런 사고는 영향받은 생산 단위를 좁혀낼 수 있느냐에 따라 회수 범위가 달라집니다. 로트 단위 추적 체계와 함께, 공급업체 계약에 면책, 보험 가입 의무, 리콜 비용 분담을 미리 정해 두는 일이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셋째, 규제당국은 더 빨리, 더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CPSC의 전자 제출 의무와 FDA의 AI 기반 분석은 서류의 공백을 통관과 점검 단계에서 곧바로 드러냅니다.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시험 성적서와 인증 자료를 요청받기 전에 전자 형태로 정비해 두어야 합니다.

건수가 그대로라는 사실만으로 리스크가 그대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리콜은 줄었는데 리스크도 줄었을까: 2026년 상반기 유럽 리콜 데이터 읽기

2026년 상반기 EU와 영국 규제당국이 집계한 제품 리콜은 총 7,115건입니다. 전년 동기 7,729건보다 7.9% 줄어든 수치로, 세지윅(Sedgwick)의 유럽 리콜 인덱스가 전하는 첫 번째 숫자입니다. 표면만 보면 유럽 시장의 제품 안전 환경이 안정되고 있다고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역을 들여다보면 결론은 달라집니다.

감소의 실체: 한 범주, 한 가지 위험

전체 감소폭은 614건인데, 소비재 한 범주에서만 723건이 줄었습니다(2,892건 → 2,169건, 25.0% 감소). 소비재를 제외한 자동차, 식음료, 의료기기, 의약품의 합계는 4,837건에서 4,946건으로 오히려 109건 늘었습니다.

소비재의 감소도 구조적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학물질 단독 위험으로 분류된 리콜이 1,550건에서 734건으로 줄었고, 이탈리아의 통보 건수가 954건에서 265건으로 급감했습니다. 특정 위험 유형과 특정 통보국의 변동이 전체 통계를 끌어내린 셈입니다. 소비재 2,169건은 여전히 지난 12년 중 두 번째로 높은 상반기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젤 네일 폴리시 리콜은 2건에서 170건으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전부 화학물질 문제였습니다. 한 품목이 반년 만에 리콜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은 총량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자동차: 12년여 만의 최고치

자동차 리콜은 393건에서 445건으로 13.2% 증가했습니다. 1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반기 수치이며, 같은 기간 상반기 평균인 267건을 크게 웃돕니다. 부상 위험이 331건으로 가장 많았고, 화재 위험은 82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차종별로는 승용차가 251건이었습니다.

통보국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영국은 142건에서 223건으로, 프랑스는 49건에서 94건으로 늘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146건에서 100건으로 줄어 10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전자제품과 완구: 화재와 질식

전자제품 리콜은 534건으로 지난 12년 중 가장 많았습니다. 감전 위험이 214건으로 1위였으나, 더 주목할 항목은 화재입니다. 화재 단독 위험은 90건에서 126건으로 40.0% 늘어 12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기자전거 리콜 25건 가운데 17건이 화재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완구 리콜도 446건으로 5.9% 늘어 12년 내 최고 수준입니다. 질식 위험이 152건에서 194건으로 증가했고, 봉제완구 112건 중 78건이 질식 위험에 해당했습니다. 석면 오염으로 인한 건강 위험 리콜도 23건 있었습니다.

의류는 119건에서 62건으로 47.9% 줄어 5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화학물질과 환경 위험이 결합된 리콜은 5건에서 14건으로 늘었고, 상당수가 REACH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식음료: 세균성 오염의 증가

식음료 리콜은 2,710건으로 7.6% 증가했습니다. 최대 원인은 비세균성 오염(1,091건)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그중 아플라톡신이 194건이었습니다.

변화는 세균성 오염에서 나타났습니다. 481건에서 596건으로 늘었으며, 살모넬라가 415건, 리스테리아가 88건, 대장균이 48건이었습니다. 품목별로는 과일·채소류가 484건에서 598건으로 증가했고, 이 가운데 농약 오염이 110건, 오크라톡신 오염이 101건이었습니다. 이물질 혼입은 172건으로, 플라스틱 38건, 금속 36건, 유리 31건 순이었습니다.

의료기기와 의약품: 총량은 줄고 제조 품질 문제는 늘고

의료기기 리콜은 1,620건으로 6.3% 줄어 3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기기 고장은 225건에서 328건으로 늘어 5년 내 최고치였고, 제조 결함은 150건에서 311건으로 두 배를 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문제도 282건에 달했습니다.

의약품도 같은 양상입니다. 전체 리콜은 197건에서 171건으로 13.2% 줄었으나, 제조 오류로 인한 리콜은 7건에서 31건으로 343% 증가했습니다. 두 산업 모두 총량은 감소했지만 제조 공정에서 비롯된 리콜은 급증했습니다.

규제 환경: 숫자 뒤에서 움직이는 것들

리콜 통계와 함께 규제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EU는 7월 1일부터 새 철강 조치를 시행해 무관세 쿼터를 연 1,830만 톤으로 정하고, 초과 물량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습니다. 같은 날 EU·미국 무역 합의의 틀도 발효되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대부분 품목에 대한 미국 관세 상한이 15%로 설정되었습니다.

영국은 20년 만에 일반제품안전규정(GPSR 2005)의 전면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개편안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도 위험 제품의 예방, 식별, 제거 의무를 부과하고, 공급망 참여자 전반에 모니터링과 문서 보존 책임을 지웁니다.

EU는 AI법상 고위험 시스템의 적용 시점을 당초 2026년 8월 2일에서 미뤘습니다. 고용, 신용평가 등 지정 분야는 2027년 12월 2일, 완구나 의료기기 같은 규제 제품에 내장된 시스템은 2028년 8월 2일입니다. 의류 업계에는 7월 19일부터 대기업의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읽어야 할 것

이번 데이터의 결론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총량 지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전체 리콜은 줄었지만 자동차, 전자제품, 완구는 12년 내 최고 수준이고 식음료도 늘었습니다. 자사가 속한 범주와 위험 유형을 따로 떼어 보아야 합니다.

둘째, 화재와 제조 결함이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화재 리콜이 나란히 최고치를 기록했고, 의료기기와 의약품에서는 제조 기인 리콜이 급증했습니다. 이 유형은 회수 범위가 넓고 배상 규모가 커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생산물배상책임보험과 리콜 비용 담보의 한도, 면책 조항을 다시 점검해 볼 시점입니다.

셋째, 책임이 공급망 전체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개편안과 EU의 각종 추적성 요건은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사와 플랫폼까지 책임 주체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리콜 대응 계획, 공급업체 계약상의 책임 분담, 문서 관리 체계를 사전에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는 사고가 난 뒤에 드러납니다.

리콜 건수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리스크가 줄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2026년 8월 22일 토요일

미숙아용 분유를 둘러싼 대규모 소송

6억7천만 달러의 합의, 제품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제품의 결함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미숙아용 특수 분유 소송은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이 단순한 배상 문제를 넘어 기업의 제품 전략과 사업 지속성까지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Claims Journal이 Reuters 보도를 인용해 2026년 8월 21일 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Abbott Laboratories는 미숙아용 특수 분유와 괴사성 장염(NEC·Necrotizing Enterocolitis)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소송 일부를 해결하기 위해 6억7,000만 달러 규모의 합의에 동의했습니다.

이번 합의에는 약 2,000명의 청구인을 대리하는 3개 로펌이 참여했습니다. 다만 Abbott는 합의를 선택하면서도 자사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입장을 유지했으며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NEC는 주로 미숙아에게 발생하는 중증 장 질환입니다. 원고들은 우유 기반 미숙아용 분유가 NEC 발생 위험을 높였다고 주장했고, 제조사들은 분유가 질환을 직접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맞섰습니다.

즉, 이 사건의 중요한 특징은 과학적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기업의 법적·재무적 손실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4억9,500만 달러의 평결에서 6억7,000만 달러의 합의까지

이번 사태를 키운 중요한 사건은 2024년 일리노이주에서 내려진 배심원 평결입니다.

Margo Gill이 제기한 소송에서 배심원단은 Abbott의 분유가 원고의 딸에게 NEC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며 4억9,500만 달러의 배상액을 인정했습니다.

2026년 5월 항소법원에서도 이 판결이 유지됐으며 이자를 포함할 경우 Abbott가 부담할 금액은 약 6억 달러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개별 사건에 대한 항소를 계속하는 것과 수많은 유사 소송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함께 계산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사건을 대상으로 한 6억7,000만 달러 규모의 합의가 선택된 것입니다.

문제는 한 건의 소송이 아닙니다

Abbott와 Enfamil 제조사인 Mead Johnson을 상대로 제기된 관련 소송은 약 1,700건에 달합니다. 연방법원 사건 가운데 825건 이상이 시카고 법원에 병합됐으며 여러 주법원에서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Abbott 측이 언급한 잠재적 청구인 규모는 최대 1만2,700명에 이릅니다. 회사는 이 숫자에 중복 청구나 분유 섭취 이전에 NEC가 발생한 사례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더 무서운 것은 하나의 거액 판결보다 이러한 소송의 연쇄성입니다.

하나의 사고가 판례를 만들고, 판례가 새로운 원고를 불러오며, 새로운 소송이 기업의 준비금과 보험한도, 브랜드 가치와 제품 전략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기업이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리스크

첫째, 과학적 불확실성이 법적 안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과관계에 관한 학계의 논쟁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배심원은 기업의 설명과 경고가 충분했는지를 별도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경고와 표시 자체가 중요한 리스크관리 수단입니다. 특히 영유아·의약품·의료기기·식품처럼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품은 위험정보의 수집, 검토, 표시, 의료진 및 소비자에 대한 전달 과정까지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셋째, 개별 클레임이 집단적 손실로 발전하는 경로를 관리해야 합니다. 작은 사고 하나를 단순한 고객 불만이나 개별 배상 문제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유사 사고의 빈도와 공통 원인을 조기에 분석하는 Claims Monitoring 체계가 필요합니다.

넷째, PL보험의 가입금액만 확인해서는 부족합니다. 제조물책임보험의 보상한도, 자기부담금, 방어비용 처리, Aggregate Limit, 리콜비용, 해외소송 적용 여부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미국처럼 배상액이 큰 시장에 제품을 공급한다면 Umbrella 또는 Excess Liability 프로그램도 중요한 검토 대상입니다.

다섯째, 제품책임은 결국 경영 리스크입니다. 거액의 배상금뿐 아니라 소송비용, 보험료 상승, 제품 판매 중단, 유통망 위축, 평판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 이후보다 사고 이전이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이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 제품에는 결함이 없다”는 확신과 “우리 회사에는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제품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가까울수록 기업은 제조공정만 관리해서는 부족합니다. 연구개발부터 품질관리, 경고와 표시, 이상사례 수집, 클레임 분석, 법률 대응, 보험 프로그램까지 하나의 연결된 위험관리 체계로 바라봐야 합니다.

6억7,000만 달러라는 숫자는 단지 합의금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품 하나의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때 그 위험이 법률·재무·평판·보험·사업중단 리스크로 얼마나 빠르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격표에 가깝습니다.


출처
Claims Journal, Abbott to Pay $670 Million to Settle Some Preterm Infant Formula Cases, 2026. 8. 21.
원출처 Reuters / 작성 Dietrich Knauth, 추가 취재 Sneha S K

2026년 1월 24일 토요일

EU 개정 제조물책임법에 대비하자

1월도 어느덧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새해의 결심은 조금씩 업무계획이 되고, 업무계획은 다시 예산과 책임, 실행 과제로 바뀌는 시기입니다. 연초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해외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EU 개정 제조물책임지침, Product Liability Directive, PLD입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제품의 일부가 된 현실을 법이 정면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제조물책임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자동차, 기계, 전자제품, 생활용품처럼 눈에 보이는 물리적 제품에 결함이 있고, 그 결함으로 인해 사람이 다치거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면 제조업자가 책임을 부담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품은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성능이 바뀝니다. 공장 설비는 AI 알고리즘으로 이상 징후를 판단합니다. 의료기기는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의 상태를 예측합니다. 가전제품은 클라우드와 연결되고, 산업용 장비는 원격으로 제어됩니다.

이제 제품의 안전은 철판의 두께나 볼트의 강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코드, AI 판단, 데이터 처리, 사이버보안, 업데이트 관리까지 제품 안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U 개정 제조물책임지침은 바로 이 변화를 법제도에 반영한 것입니다.


1. 이제 소프트웨어와 AI도 제조물입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제조물’의 범위 확대입니다.

개정 지침은 독립형 소프트웨어, AI 시스템, 제품에 포함되거나 업데이트되는 소프트웨어, 디지털 제조물까지 제조물책임의 범위에 포함합니다. 여기에는 3D 프린팅 파일과 같은 디지털 설계 자료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큰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산업용 장비가 기계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제어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오작동하여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제 그 소프트웨어 역시 제조물책임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AI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사용자의 신체나 재산에 손해를 입혔다면, 기업은 단순히 “알고리즘의 문제였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앞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중요해집니다.

우리 제품에 소프트웨어가 포함되어 있는가.
AI 또는 자동 판단 기능이 있는가.
제품 출시 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가.
업데이트로 인해 제품의 성능이나 안전성이 달라지는가.
외부 데이터나 클라우드 서비스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해당 기업은 개정 PLD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2. 손해의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배상 대상이 되는 손해의 확대입니다.

기존 제조물책임은 주로 신체 상해와 물리적 재산 손해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정 지침은 현대 사회의 피해 양상이 훨씬 복잡해졌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의학적으로 확인된 정신적 피해가 손해 범위에 포함됩니다.
둘째, 데이터의 손실 또는 훼손도 배상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기업용 장비나 디지털 서비스가 오류를 일으켜 고객의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사라진 경우, 과거에는 전통적인 제조물책임의 범위에 포함되는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데이터 손실도 중요한 손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특히 의료기기, 산업용 IoT 장비, 스마트팩토리 설비, 커넥티드카, AI 기반 검사 장비, 보안 장비, 클라우드 연동 제품을 제조하거나 공급하는 기업은 데이터 리스크를 단순한 IT 이슈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데이터는 제품 안전과 제조물책임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3. 책임지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세 번째 변화는 책임 주체의 확대입니다.

과거에는 제조업자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과 디지털 제품 생태계에서는 한 제품이 여러 기업의 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하드웨어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사, 플랫폼 운영자, 부품 공급자, 수입업자, 유통업자, 유지보수 서비스 제공자, 제품을 개조하거나 리퍼브하는 업체가 모두 관여할 수 있습니다.

개정 PLD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책임 주체를 넓혔습니다.

특히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EU 역외 기업의 제품에 대한 책임 구조입니다.

한국 등 제3국 기업이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 EU 내 수입업자나 공식 대리인, 경우에 따라 물류 또는 유통 관련 경제 운영자에게도 책임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유럽 파트너의 문제가 아닙니다.

EU 내 수입업자나 대리인이 제조물책임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면, 이들은 한국 제조사에게 더 엄격한 계약 조건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술 문서 제출, 품질보증, 손해배상 조항, 보험 가입, 리콜 협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리 의무 등이 계약서에 더 강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개정 PLD는 유럽 현지 법률이지만, 실제 영향은 한국 기업의 수출 계약, 공급망 관리, 보험 조건, 품질관리 체계까지 미치게 됩니다.


4. 피해자의 입증 책임이 완화됩니다

이번 개정에서 기업이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입증 책임의 완화입니다.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제품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AI, 소프트웨어, 복잡한 전자제어 시스템이 포함된 제품에서는 소비자가 그 구조를 이해하고 결함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내부 알고리즘, 소스코드, 설계 자료, 테스트 결과, 업데이트 이력은 대부분 기업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정 지침은 이러한 정보 비대칭을 고려합니다.

법원은 일정한 경우 결함이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필요한 기술 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제출을 거부할 경우, 결함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앞으로는 “우리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평소에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제품 설계 단계의 위험성 평가, 시험성적서, 품질검사 기록, 소프트웨어 버전 관리, 업데이트 이력, 보안 취약점 대응 기록, 고객 불만 처리 내역, 리콜 판단 과정, AI 학습 및 검증 자료 등이 모두 중요한 방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하지 못하면 책임이 커질 수 있습니다.


5. 책임 기간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시효 규정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제품이 시장에 공급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원칙은 유지됩니다. 그러나 신체 손상이나 질병처럼 피해가 늦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최대 15년까지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의료기기, 화학제품, 배터리, 장기간 사용하는 산업설비, 인체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품을 판매하고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은 제품 수명주기 전체를 기준으로 책임을 관리해야 합니다. 출시 전 안전성 검토뿐 아니라 출시 후 모니터링, 고객 불만 분석, 사고 보고 체계, 부품 교체 이력, 업데이트 기록, 단종 후 지원 정책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제조물책임은 이제 판매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 생애주기 전체의 리스크가 되고 있습니다.


6. 한국 기업에 주는 의미

EU 개정 제조물책임지침은 유럽의 법제도입니다. 그러나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럽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기업은 사전 점검이 필요합니다.

스마트기기,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배터리, 산업용 기계, 의료기기, 로봇, 드론, 보안 장비, AI 검사 장비,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IoT 장비,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제조설비를 유럽에 공급하는 기업입니다.

이들 기업은 더 이상 제품 안전을 하드웨어 품질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언제 업데이트되었는가.
업데이트 전후 안전성 검증은 이루어졌는가.
AI 판단 오류 가능성은 평가되었는가.
사이버 공격으로 제품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은 없는가.
고객 데이터가 손실될 경우 대응 절차는 있는가.
EU 내 수입업자와 책임 분담은 계약상 명확한가.
보험은 새로운 제조물책임 범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첫째,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제품 중 소프트웨어, AI, 디지털 파일, 클라우드 연동 기능이 포함된 제품이 무엇인지 분류해야 합니다. 단순한 기계 제품으로 보였던 장비도 실제로는 소프트웨어 제어, 센서 데이터, 원격 업데이트 기능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업데이트는 제품 개선 수단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결함을 만들 수 있는 리스크 요인입니다. 업데이트 전 테스트, 승인 절차, 배포 기록, 고객 통지, 업데이트 실패 시 복구 절차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셋째, AI 기능에 대한 검증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AI가 제품 성능이나 안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학습 데이터, 검증 절차, 오류 가능성, 한계 설명, 사용 조건 등을 문서화해야 합니다. AI는 편리한 기능이지만, 책임 소재를 흐리게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명확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넷째, EU 내 수입업자와 대리인 계약을 점검해야 합니다.

책임 주체가 확대되면 유럽 파트너들은 더 강한 면책 조항과 보증 조항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상 리콜 비용, 소송 대응, 기술 자료 제공, 보험 가입, 손해배상 한도 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합니다.

다섯째, 제조물책임보험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기존 PL보험이 소프트웨어 오류, 데이터 손실, AI 관련 결함, 리콜 비용, 해외 소송 방어비용을 충분히 보장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사이버보험, 리콜보험, 임원배상책임보험과의 연계도 검토해야 합니다.

여섯째, BCP 관점에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제조물책임 사고는 단순한 배상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리콜, 생산 중단, 수출 중단, 평판 훼손, 거래처 이탈, 인증 문제, 공급망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 발생 시 누가 판단하고, 누가 고객에게 알리고, 누가 규제기관과 소통하며, 누가 생산과 물류를 조정할 것인지 사전에 정해 두어야 합니다.


8. 제조물책임은 법무팀만의 일이 아닙니다

제조물책임 리스크는 흔히 법무팀이나 품질팀의 업무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개정 PLD 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개발팀은 설계와 검증 자료를 남겨야 합니다.
품질팀은 시험과 검사 기록을 관리해야 합니다.
IT팀은 소프트웨어와 사이버보안을 책임져야 합니다.
영업팀은 고객 고지와 계약 조건을 점검해야 합니다.
구매팀은 부품 공급자의 책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법무팀은 계약과 소송 리스크를 관리해야 합니다.
보험 담당자는 보장 범위와 한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경영진은 이 모든 활동이 전사적으로 작동하도록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결국 제조물책임 관리는 전사적 리스크 관리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좋은 제품임을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신속하고 책임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입니다.


9. 준비한 기업은 규제를 경쟁력으로 바꿉니다

규제는 늘 부담스럽습니다. 새로운 법이 생기면 문서가 늘고, 절차가 복잡해지며, 비용도 발생합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규제를 먼저 이해하고 대응하는 기업이 더 큰 신뢰를 얻습니다.

유럽의 고객과 파트너는 제품의 가격만 보지 않습니다. 안전성, 투명성, 책임 있는 대응 능력, 데이터 보호, 소프트웨어 관리, 공급망 신뢰성을 함께 봅니다.

따라서 이번 EU 개정 제조물책임지침은 위협이면서 동시에 기회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기업에는 비용이 됩니다.
그러나 준비한 기업에는 신뢰가 됩니다.
신뢰는 계약이 되고, 계약은 시장이 됩니다.


마무리하며

이제 제조물책임은 공장에서 출고되는 물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품 안의 코드, AI의 판단, 업데이트 이력, 데이터 관리, 사이버보안, 유럽 내 대리인과의 계약, 보험과 BCP까지 모두 연결된 복합 리스크가 되었습니다.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거나 진출을 계획 중인 기업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제품은 개정 PLD의 영향을 받는가.
제품의 결함 가능성을 설명할 자료가 있는가.
소프트웨어와 AI의 변경 이력을 관리하고 있는가.
EU 파트너와 책임 구조가 명확한가.
보험과 BCP는 실제 사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곧 기업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높이는 과정입니다.

새해의 리스크 관리는 멀리 있는 위기를 예측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가온 제도 변화에 성실히 대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EU 개정 제조물책임지침을 단순한 법률 뉴스로 넘기지 마시고, 우리 기업의 제품 안전, 디지털 관리, 공급망 책임, 보험, BCP를 함께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제조물책임 판례로 배우는 기업의 위험관리

대법원 주요 17건이 기업에 남긴 Risk Management의 교훈

제품 하나가 시장에 나가기까지 수많은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할 것인지, 예상 가능한 오사용까지 설계에 반영할 것인지, 소비자에게 어떤 위험을 경고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그동안의 판단은 법정에서 다시 검토됩니다.

우리나라 제조물책임법은 2000년 제정되어 2002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제조물책임을 둘러싼 대법원 판례들은 단순히 ‘누가 손해를 배상할 것인가’를 넘어 기업이 제품의 위험을 어디까지 예측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중요한 기준을 축적해 왔습니다.

특히 판례를 살펴보면 제조물책임은 제조공정의 불량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설계, 제조, 품질관리, 시험·검증, 사용설명서, 경고, 유통, 사고 대응, 해외 판매, 보험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전체 Risk Management System과 연결됩니다.

여기서는 제조물책임 및 그 주변 법리를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는 대법원 주요 판례 17건을 살펴봅니다.


1. 세탁기 어린이 익사 사건

대법원 2003. 5. 16. 선고 2002다42087

세탁기 내부의 물에 어린이가 빠져 사망한 사고를 둘러싸고 제품의 안전성과 제조자의 책임이 문제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제품 사고가 기업에 던지는 핵심 질문은 분명합니다.

“정상적인 사용뿐 아니라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오사용까지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제품 안전관리에서는 소비자가 설명서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이·노약자 등 취약한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foreseeable misuse, 즉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오사용’ 역시 중요한 위험관리 대상이 됩니다.


2. 헬리콥터 추락 사건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17333

제조물책임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판례입니다.

대법원은 설계상 결함을 판단할 때 제품의 특성과 용도, 사용자의 기대, 예상되는 위험, 사용자의 위험 인식과 회피 가능성, 합리적인 대체설계의 가능성과 경제적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제조상·설계상 결함이 없더라도 적절한 설명이나 지시·경고를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면 표시상의 결함이 문제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것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서로 다른 책임입니다.


3. 자동차 급발진 사건

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16771

자동변속기 차량의 급발진 주장과 관련하여 제조물의 결함과 입증책임, 합리적 대체설계, 경고의 적절성 등이 다뤄졌습니다.

대법원은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제조자의 배타적 지배 영역에 속하는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등의 간접사실이 증명된다면 결함과 인과관계에 관한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서는 차량 결함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례는 PL 사고에서 결국 기술적 증거와 사고 데이터의 보존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4. 비료 사용 후 장미 피해 사건

대법원 2006. 3. 10. 선고 2005다3136

농업용 제품과 같이 사용조건과 환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제조물에서는 제품 자체의 품질뿐 아니라 사용방법과 위험정보의 전달이 중요합니다.

기업의 위험관리 관점에서는 제품을 판매하는 순간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고려한 설명과 정보제공 체계까지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사례입니다.


5. 감기약 ‘콘택 600’ 부작용 사건

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다52287

의약품의 부작용과 제조물책임이 문제된 대표적 사건입니다.

의약품은 정상적으로 제조되더라도 본질적으로 부작용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원은 효용과 위험, 대체설계 가능성, 위험의 알려진 정도, 경고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기업이 주목해야 할 것은 Post-Market Surveillance, 즉 출시 이후 안전성 관리입니다.

출시 당시 적법했다는 사실만으로 제품의 전 생애주기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6. 혈액제제와 바이러스 감염 사건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08다16776

혈액제제와 바이러스 감염 사이의 인과관계 및 제조·공급자의 책임이 문제된 사건입니다.

의약품·바이오 제품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피해자가 구체적인 제조공정과 결함을 직접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업에게는 원재료 관리, 검사 결과, 제조기록, Lot 추적, 품질관리 자료 등 Traceability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방어수단이 됩니다.


7. 자동차 급발진 주장과 판매자의 책임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0다72045

차량 사고 이후 판매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제조물책임에서 인정되는 증명책임 완화 법리를 판매자의 하자담보책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원칙적으로 부정했습니다.

이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제조사·수입사·판매사의 책임이 동일한 법리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Supply Chain에서 각 당사자의 법적 지위와 계약상 책임을 사전에 구분해 놓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8. 베트남전 고엽제 사건

대법원 2013. 7. 12. 선고 관련 사건

고엽제 제조기업과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피해를 둘러싸고 제조물의 범위, 결함, 인과관계와 제조기업의 책임 등이 광범위하게 다뤄졌습니다.

특정 국가나 특정 구매자를 위해 공급된 물품이라고 하더라도 제조물책임 논의에서 당연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기업에게는 특수 목적 제품과 B2B 제품도 PL Risk의 예외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판례입니다.


9. 로타바이러스 백신과 송아지 집단 폐사 사건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88870

로타바이러스 예방백신 사용 후 태어난 송아지들이 집단 폐사하면서 백신의 하자와 인과관계가 문제됐습니다.

대법원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구체적인 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일정한 요건 아래 증명책임을 완화할 수 있다는 법리를 재확인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백신의 하자를 추단하기에 충분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고 발생과 제품 결함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 역시 위험관리자가 기억해야 할 대목입니다.


10. 석면 함유 베이비파우더 사건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38417

석면이 함유된 베이비파우더 문제와 관련하여 소비자들이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이 판례는 제조사의 PL 책임을 직접 인정한 판례라기보다는 의약외품·소비제품의 안전과 규제기관의 권한 행사 및 국가배상책임이 문제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기업의 관점에서는 제품사고가 제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기관, 공급망, 원재료 안전성, 리콜 및 소비자 신뢰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1. 담배 흡연과 건강침해 사건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22092

장기간의 흡연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담배의 결함 및 제조기업의 책임 등이 쟁점이 됐습니다.

이 사건은 제조물책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인 장기간에 걸친 노출과 인과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제품의 위험이 사고 순간에 나타나지 않고 수년 또는 수십 년 후 나타나는 산업에서는 과거의 연구자료와 경고 내용, 당시의 기술 수준까지 미래의 소송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12. 해외 제조물책임과 국제재판관할 사건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2다21737

국내에서 제조된 전기압력밥솥이 미국에서 판매된 뒤 제조물책임 문제가 발생하면서 미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제조업자가 해당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지역 법원에 제소될 것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 관련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했습니다.

수출기업에는 특히 중요한 판례입니다.

제품을 해외에 판매한다는 것은 상품만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Liability Risk도 함께 국경을 넘는다는 의미입니다.


13. 제조물 자체 손해와 영업손실 사건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24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영업손실이 제조물책임법상 손해에 포함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제조물 자체에 발생한 손해뿐 아니라 그 결함 때문에 발생한 영업손실 역시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재산상 손해’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제조물책임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례는 기업보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PL보험, 재산보험, 기계보험, 기업휴지(BI)보험은 서로 같은 손해를 담보하는 보험이 아닙니다.


14. 혈액제제 바이러스 감염 사건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3다26708 외

혈액제제를 통한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하여 다시 제조·공급자의 책임과 인과관계가 다뤄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제품 안전에서 제조공정 관리뿐 아니라 원재료의 출처, 검사기술,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 위험정보의 축적과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은 Risk Control의 실패가 장기간의 집단소송과 평판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15. 자동차 급발진 관련 형사사건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7도5389

급발진을 주장하는 교통사고에서 운전자의 형사책임과 사고원인이 쟁점이 된 사례입니다.

민사 제조물책임 사건과 직접 동일한 법리는 아니지만, 제품 결함을 주장하는 사고에서는 민사·형사·보험조사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업은 중대 제품사고 발생 시 초기 단계부터 법무·품질·기술·보험·홍보 부서가 공동으로 사고 대응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16.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법원 2018. 1. 25. 선고 2017도13628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와 관련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표시·광고 문제 등이 다뤄진 대표적인 형사사건입니다.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제품이 시장에 공급될 경우 손해배상 차원을 넘어 경영진과 실무자의 형사책임, 리콜, 평판훼손, 사업중단 등으로 위험이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기업 위험관리에 남긴 메시지는 무겁습니다.

안전성 검증은 출시를 늦추는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을 지키는 투자입니다.


17. 열병합발전설비 가스터빈 블레이드 파손 사건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7다1448

열병합발전설비의 가스터빈 압축기 블레이드가 파단되면서 다른 블레이드와 부품까지 손상된 사고입니다.

대법원은 파손된 블레이드가 가스터빈의 구성 부품이고 손상된 부분 역시 가스터빈의 다른 구성 부분이라면 수리·교체 비용은 제조물 ‘자체’에 발생한 손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제조물책임 법리에 따른 손해배상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산업설비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살펴볼 판례입니다.


17건의 판례에서 읽는 6가지 Risk Management Insight

17건의 판례를 하나씩 보면 사건은 모두 다릅니다. 세탁기, 자동차, 헬리콥터, 의약품, 백신, 담배, 혈액제제, 가습기살균제, 발전설비까지 제품의 성격도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기업 위험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이 보입니다.

첫째, 제품안전은 제조공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설계상의 결함, 제조상의 결함, 표시·경고상의 결함까지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둘째, ‘법규를 지켰다’는 것과 ‘안전한 제품이다’라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기술 수준의 변화와 새롭게 발견되는 위험정보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합니다.

셋째, Documentation이 곧 Risk Management입니다.
설계검토, 시험성적, 품질검사, 원재료 추적, 변경관리, 경고문 검토, 소비자 불만과 사고정보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사고가 발생한 뒤의 대응도 제조물책임 관리의 일부입니다.
사고조사, 증거보존, 리콜 판단, 관계기관 보고,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하나의 Crisis Management 체계로 관리해야 합니다.

다섯째, 공급망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원재료 공급자, 제조사, OEM·ODM 업체, 수입업자, 유통업자와 판매자의 책임이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보험은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PL보험만 가입했다고 모든 제품사고 손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콜비용, 제조물 자체 손해, 기업휴지손실, 해외소송비용 등은 별도의 보험조건과 담보구조를 검토해야 합니다.


판례가 기업에 묻는 질문

제조물책임 판례를 읽다 보면 법원이 기업에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까?
예상했다면 줄일 방법이 있었습니까?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렸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을 증명할 기록이 남아 있습니까?

Risk Management는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을 피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설계와 공정을 바꾸고, 필요한 경고를 제공하며, 그래도 남는 위험은 계약과 보험으로 이전하는 일련의 경영 과정입니다.

대법원의 제조물책임 관련 17개 판례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좋은 제품은 잘 작동하는 제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측 가능한 위험을 통제하고, 그 통제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합니다.

기업의 제조물책임 관리는 법무팀만의 일이 아닙니다.
R&D에서 시작하여 생산·품질·구매·영업·법무·보험을 거쳐 최고경영진까지 연결되는 전사적 위험관리의 문제입니다.

제품은 공장에서 완성되지만,
제품의 책임은 시장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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