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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정보만 나누어도 담합: 44조 원 유가 담합 혐의가 기업과 경영자에게 묻는 것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휘발유, 경유, 등유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정유사 S사와 H사에 심사보고서를 송부하고 심의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부터 중동 전쟁 직후인 올해 3월까지 4년여간 판매가격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가격을 담합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담합 관련 매출은 44조 1,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담합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만 심사보고서는 심사관의 의견이며 위원회의 최종 판단이 아닙니다. 두 회사는 8주 안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한 회사는 성실히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다른 회사는 담합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글은 유무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보여주는 공정거래법 위반의 무게를 살피려는 것입니다.

  1. 기업에 미치는 영향

첫째, 과징금은 이익이 아니라 매출에 매겨집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종전 기준인 관련 매출액의 3%에서 10.5% 미만을 단순 적용하면 최대 4조 6,000억 원대가 산출될 수 있습니다. 담합으로 얻은 이익이 얼마였든, 계산의 출발점은 44조 원입니다.

둘째, 과징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담합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공정거래법은 담합에 대해 손해액의 3배 이내 배상 책임을 두고 있습니다. 행정 제재 뒤에 민사 소송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셋째, 제재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올해 개정된 과징금 고시는 중대한 담합의 부과기준율을 관련 매출액의 15%에서 18%로 끌어올렸고, 반복 위반에 대한 가중은 늘리고 조사 협조에 따른 감경은 줄였습니다. 과징금을 사업 비용으로 여기던 계산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넷째, 신뢰의 손실입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한 시기에 국민 생활과 직결된 기름값을 두고 제기된 혐의입니다. 최종 판단과 무관하게 평판의 비용은 이미 발생하고 있습니다.

  1. 경영자에게 미치는 영향

첫째, 형사책임입니다. 부당한 공동행위는 회사만이 아니라 행위에 관여한 개인도 징역이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검찰 수사도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둘째, 회사에 대한 배상책임입니다. 대법원은 담합으로 회사가 과징금을 부담한 사안에서, 담합을 직접 지시하지 않은 대표이사에게도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고 감시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몰랐다는 말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왜 모를 수밖에 없는 조직을 두었느냐는 물음으로 되돌아옵니다.

셋째, 보험의 한계입니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방어비용과 배상책임을 덜어줄 수 있으나, 과징금과 벌금, 고의적 위법행위는 통상 보상 대상이 아닙니다. 경영자가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것은 보험증권이 아니라 평소의 감독 기록입니다.

  1. 인사이트

정보 교환만으로도 위반이 됩니다. 심사관은 이번 사건에 가격담합과 함께 정보교환 금지 규정을 적용했고, 주된 행위는 정보교환이라고 보았습니다. 가격을 합의한 적이 없다는 항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경쟁사 담당자와 주고받는 일상적인 가격 정보가 바로 그 위험입니다.

위기는 담합의 유혹이 커지는 때입니다. 공정위는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변한 것이 정보교환의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경쟁사의 움직임을 알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시장이 흔들릴 때야말로 준법 점검을 강화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과점 시장은 늘 감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정유 4사가 시장의 약 98%를 차지하고, 두 회사의 점유율은 약 50% 수준입니다. 참여자가 적은 시장에서는 작은 접촉도 크게 읽힙니다.

담합은 안에서 무너집니다. 한 회사는 일부 혐의가 경쟁사 관계자의 진술에 기초한 것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진위는 심의에서 가려질 일이나, 분명한 것은 담합의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상대방이라는 점입니다.

기업이 할 일은 분명합니다. 경쟁사 접촉의 기준과 기록 절차를 정하고, 영업 조직의 메신저와 모임을 포함해 교육하며, 자율준수 프로그램이 문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된 뒤 자료를 지우는 일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맺으며

4년 동안 하루 평균 약 300억 원의 매출이 이 혐의에 걸려 있습니다. 영업 현장의 누군가에게는 그저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한 줄의 값이 얼마인지를, 이 사건은 조 단위의 숫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 2026년 10월 7일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및 주요 언론 보도


2026년 8월 2일 일요일

시장이 무너질 때 드러나는 것은 구조의 견고함이다

며칠 전까지 이어지던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이제는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가 시작됐습니다. 비가 그친 자리에 폭염이 들어서듯, 지난주 우리 증시에도 예고 없이 폭염 못지않은 열기, 아니 정확히는 냉기가 몰아쳤습니다. 며칠 사이 지수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 역시 담당자님들 안부가 궁금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코스피, 사상 초유의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7월 28일과 29일, 코스피와 코스닥 양대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습니다. 7월 한 달간 코스피 하락률은 33%를 넘어섰는데,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27% 하락폭을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이틀 만에 시가총액 865조 원이 증발했다는 소식은 저 역시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더 눈길이 가는 대목은 이번 폭락의 성격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역대급 실적을 발표한 직후였던 만큼, 기업 펀더멘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방아쇠는 해외 헤지펀드의 마진콜과 레버리지 강제 청산, 그중에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강제 매매였다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반도체 대장주 두 종목에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레버리지發 변동성이 증폭됐고, 이것이 시장 전체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 셈입니다.

주식시장 붕괴가 남기는 리스크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담당자님들께 함께 짚어드리고 싶은 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임원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리스크입니다. 급락장에서는 자산운용, 자금조달, 담보관리와 관련한 임원의 판단이 사후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 쉽습니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에 노출된 계열사나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손실 발생 이후 주주대표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둘째, 금융회사의 전문직업배상책임 이슈입니다. 레버리지 ETF를 설계·운용·판매한 자산운용사, 증권사 입장에서는 상품 설명 의무 이행 여부, 리스크 고지의 충분성 등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신용·담보 리스크의 연쇄 확산입니다. 마진콜로 인한 강제 청산은 한 곳에서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의 유동성과 담보가치에 파급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금융기관뿐 아니라 담보를 활용한 자금조달 구조를 가진 일반 기업에도 간접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보험 프로그램에서 점검해보실 사항

  • D&O 보험 한도 및 담보 범위: 급락장에서의 투자·자금관리 판단과 관련한 주주대표소송 시나리오가 현재 가입하신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커버되는지 재확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레버리지·파생 상품 노출도 점검: 계열사나 자금운용 부서에서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익스포저가 있다면, 관련 리스크가 기존 보험 프로그램의 언더라이팅 정보에 최신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체계: 시장 급변 시 공시·IR 대응의 적정성 역시 추후 소송에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는 만큼, 관련 프로세스를 사전에 점검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시장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보여주듯, 리스크는 언제나 가장 견고해 보이는 곳에서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무더위 속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편지에서는 이와 이어지는 주제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26년 7월 18일 토요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조직의 균열을 생각합니다

태풍 바비는 잘 견디셨는지요. 강풍과 비가 몰아칠 땐 눈에 보이는 피해에만 신경이 쏠리지만, 정작 태풍이 지나간 뒤에야 지붕의 실금이나 배수구의 막힘 같은, 미리 손봤어야 할 약한 지점들이 드러나곤 합니다. 조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평소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팀이, 어느 순간 신고 한 건으로 그동안 쌓여 있던 균열을 드러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오늘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이것이 왜 결국 경영진의 책임 문제로 번지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고는 늘고 있는데, 신고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노동청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 6,373건으로 전년 대비 20% 넘게 늘었고, 5년 전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신고의 '내용'입니다. 팀 간식을 나누지 않았다거나 상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는 식의 감정적 갈등은 물론, "보고서를 다시 보완해 오라"거나 "결론부터 말하라"는 정당한 업무 지시조차 괴롭힘으로 신고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신고들이 처리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개선 조치나 과태료, 송치로 이어진 건은 전체의 8.2%에 불과하고, 법 위반이 없다고 종결된 사건도 31%에 달합니다. 즉 상당수는 결과적으로 '괴롭힘이 아니었다'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신고가 접수되고 조사가 진행되는 그 과정 자체에서, 피신고인의 평판과 조직 내 신뢰는 이미 손상을 입습니다. 감독관 한 명이 수십 건을 동시에 처리하는 현실에서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 위주로 결론이 나기도 하고, 정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는 맥락에 따라 판단이 크게 갈립니다.

왜 이 문제가 경영진의 책임으로 이어질까요

여기서 리스크 관리 담당자로서 강조드리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이슈는 더 이상 인사팀 선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자(회사)에게는 법적으로 괴롭힘을 예방하고, 발생 시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조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피해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회사의 관리 체계 자체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 관리 체계를 설계하고 승인한 것은 결국 경영진입니다. 조사 절차가 미비했거나, 반복적인 신고에도 구조적 개선을 하지 않았거나, 조직문화 리스크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임원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주장하는 소송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주나 이해관계자가 조직문화 관리 실패를 이유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도 국내외에서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즉, 개별 신고 한 건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관리해왔는가"라는 시스템 전체가 심사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 짚어보실 부분

몇 가지 점검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첫째, 신고·조사 프로세스의 문서화입니다. 접수부터 조사, 조치, 사후관리까지 각 단계가 명확히 기록되어야 합니다. 이는 향후 분쟁 발생 시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둘째, 외부 전문가 조사의 활용입니다. 사내 조사만으로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사안이 민감하거나 경영진이 관련된 경우일수록 외부 자문을 통한 조사가 리스크를 줄여줍니다.

셋째, 보험 커버리지 점검입니다. D&O(임원배상책임보험)는 조직문화 관리 실패로 인한 경영진 개인 책임을 방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여기에 더해 고용관행배상책임보험(EPLI, Employment Practices Liability Insurance)을 함께 검토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PLI는 괴롭힘, 차별, 부당해고 등 고용 관련 청구에 특화된 담보로, D&O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합니다. 두 담보의 경계와 중복 여부를 언더라이팅 단계에서 명확히 정리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관리자 교육입니다. 정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자체가 관리자에게는 리스크입니다. 구체적인 사례 기반 교육을 통해 관리자 스스로 리스크를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 사전 예방의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미리 점검해두지 않은 배수구가 뒤늦게 말썽을 부리듯, 조직문화 리스크도 평소에 정비해두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순간 큰 손실로 돌아옵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다음 편지에서는 이 흐름과 이어지는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관련 담보 이슈를 다뤄보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라며,


한줄 인사이트

괴롭힘 신고의 8할은 '무혐의'로 끝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손상된 신뢰와 평판은 소송으로 되돌아옵니다 — 조직문화 관리는 이제 인사 이슈가 아니라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과제입니다.

2026년 7월 12일 일요일

목표를 향한 질주가 멈춰야 할 때

지난 주말, 초강력 태풍 '바비'가 중국 대륙을 그대로 관통했습니다. 저장성에서만 수백만 명이 긴급 대피했고, 도로는 하천이 되었으며, 200미터 높이의 폭포가 역주행할 정도의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뉴스 화면 속 그 압도적인 힘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이든 조직이든, 축적된 압력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는 것 말이죠. 태풍은 며칠 안에 세력을 잃고 소멸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곪은 문제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늦게,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이번 주 제가 계속 눈여겨보고 있는 소식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국내 4대 정유사와 임직원들이 유가 담합 혐의로 무더기 기소된 사건인데요. 검찰이 추산한 담합 규모만 14조 원, 시장 전체에 미친 경쟁제한 효과는 26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단일 담합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오늘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담합이라는 리스크가 조직과 개인에게 어떤 경로로 퍼져나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목표를 향한 욕망, 그 끝에서

이 사건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대목은 담합의 시작이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옛 동료 사이의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사소한 제안이었다는 점입니다. 몇 년 전 식당에서 나눈 대화가 매출 정보 공유 관행으로 굳어졌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위기 상황에서 그 관행이 노골적인 가격 조율로 폭발했습니다. 담당 부서의 내부 메신저에는 실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자축의 메시지가 오갔다고 하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려는 의지 자체는 조직에게 당연히 필요한 동력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어떻게든'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하는 순간, 그 동력은 조직 전체를 무너뜨리는 압력으로 바뀝니다. 개인의 성과 욕심이든, 조직의 시장점유율 욕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담합이 퍼져나가는 다섯 단계

이번 사건을 보면 담합 리스크가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 조사 —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가 시작이었습니다. 조사 계획이 사전에 감지되자 일부 회사는 내부 자료와 메신저 대화방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이 대응 자체가 별도의 조사방해 혐의로 이어졌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대응은 증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감추려는 시도 그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2. 과징금 — 공정위는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관련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하는 행정 절차를 진행합니다. 검찰의 형사 처벌 목적 산정액과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 기초는 개념이 달라, 최종 제재 수위는 앞으로도 계속 조정될 수 있습니다.

3. 형사처벌 — 가격결정 부서의 실무 책임자가 구속기소되었고, 법무실장과 국내영업 부문장 등도 조사방해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담합의 핵심은 실무진이 만들었지만, 그 실무진의 행위를 관리·감독해야 했던 상위 라인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이번 사건의 시사점입니다.

4. 임원의 책임 — 검찰은 임원급까지의 관여를 입증할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번 사건에 국한된 결과일 뿐입니다. 담합이 장기간 반복적인 관행으로 굳어졌다면, 이를 몰랐다는 항변은 이사회의 내부통제 및 컴플라이언스 감독의무 위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외적으로 담합 사건은 임원의 선관주의의무·감시의무 위반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5. 주주대표소송 — 26조 원대 경쟁제한 효과라는 숫자는, 회사가 입은 손해(과징금, 손해배상, 평판 손실, 거래 정지 등)에 대해 주주들이 이사·임원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대표소송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담합으로 인한 회사의 재무적 손실이 클수록, 그 책임을 감독하지 못한 이사회를 향한 주주들의 시선도 날카로워집니다.

우리 프로그램에 던지는 질문

이 다섯 단계를 보험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몇 가지 실질적인 점검 포인트가 보입니다.

  • D&O 보험(임원배상책임보험)의 담합·독점규제 관련 면책조항을 다시 확인하실 때입니다. 고의적 법령 위반에 대한 면책 범위, 그리고 조사 단계부터 발생하는 방어비용(law firm 선임료, 포렌식 비용 등)의 선지급(advancement)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핵심입니다.
  • 내부 조사 대응 프로토콜입니다. 규제 당국의 현장조사 계획을 인지했을 때 자료를 삭제하지 않고 적법하게 보존·협조하는 절차가 문서화되어 있는지, 임직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증거인멸은 담합 자체보다 더 무거운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실효성입니다. 경쟁사와의 정보 교환 관행이 실무 차원에서 관행화되어 있지는 않은지, 특히 가격·판매·공급 관련 부서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한 정기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있는지가 향후 임원 책임 공방에서 결정적인 방어 근거가 됩니다.
  • 주주대표소송 리스크에 대비한 D&O 보상한도 재검토입니다. 최근 몇 년간 담합·ESG·컴플라이언스 관련 대표소송의 청구 규모가 커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기존 한도가 현재의 리스크 익스포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다시 살펴보실 것을 권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태풍 바비는 이제 세력을 잃고 한반도를 관통한 뒤 소멸할 것이라는 예보입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정비와 점검이 필요합니다. 무너진 것을 세우고, 다음 태풍에 대비해 구조를 보강하는 일 말이죠. 조직의 리스크 관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위기가 지나갔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이 우리 조직의 컴플라이언스와 보험 프로그램에 어떤 빈틈을 남겼는지 지금 점검하시는 것이 다음 태풍을 견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방향을 줄 뿐,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늘 건강하시고, 남은 장마 무탈하게 넘기시길 바랍니다.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AI가 만드는 새로운 소송 지형, 우리는 준비되어 있습니까?

런던정경대(LSE)가 최근 발표한 기후소송 연례 보고서에서, 저는 낯설지 않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화석연료 기업을 향해 조준됐던 기후소송의 화살이, 이제는 AI 데이터센터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칠레의 구글 데이터센터 개발 허가 취소로 시작됐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아일랜드의 국가 전력 정책, 미국 캘리포니아의 재생에너지 조건 의무화, 영국의 환경영향 계약 구속, 그리고 xAI의 청정대기법 위반 소송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쟁점도 단순히 탄소배출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력, 냉각수, 지하수, 대기오염,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까지 — 데이터센터 운영의 모든 국면이 법정에 소환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송의 승패가 아닙니다.

소송은 지더라도 사업 조건을 바꾸고, 인허가 절차를 지연시키며,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고, 투자자의 시선을 차갑게 만듭니다. LSE 보고서는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은 사업자의 의사결정과 인허가 절차를 바꾸는 효과를 낳는다"고요.

저는 이것을 리스크 관리의 언어로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기후소송은 이제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와 **전환 리스크(Transition Risk)**에 이어, **소송 리스크(Litigation Risk)**라는 세 번째 기후 리스크 범주를 본격적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리스크는 기존 보험 프로그램이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확장을 가속화하는 지금, 그 배후에는 건설·운영·금융·에너지 공급망에 연결된 수많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연루될수록, 환경 인허가 미비나 화석연료 의존 구조에 따른 소송 리스크에 간접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귀사의 에너지·인프라 포트폴리오에서, 데이터센터 관련 리스크는 어떻게 식별되고 있습니까? 기후소송 리스크가 D&O(임원배상책임), 환경책임보험, 또는 프로젝트 금융 보험 조건 속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고객사의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 검토의 충분성이 보험 언더라이팅의 변수로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소송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회의 기대와 기업의 행동 사이의 간극이 누적될 때 터집니다. AI 혁명이 가져온 데이터센터 붐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다루지 않는 기업은, 어느 순간 법정에서 그 청구서를 받아들게 될 것입니다.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것은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오는지를 먼저 읽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후소송 트렌드는, 내일 우리 고객의 보험 클레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맑은 6월의 끝자락, 함께 이 지형을 읽어가시길 바랍니다.

—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 보험 프로그램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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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3일 토요일

중처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묻는다

오늘은 유난히 무더운 날입니다. 장마철 특유의 습한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늘도 많은 분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발생했던 광주 대표도서관 신축공사 붕괴 사고의 최근 사법처리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공사의 경영자를 비롯해 4명이 구속되고, 모두 40명이 입건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 자체도 참담하지만, 문득 그들의 가족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장이 구속되고, 가족들은 언론의 관심과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고는 기업과 경영자, 그리고 가족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안전관리자를 향한 법이 아닙니다. 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묻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안전을 실천하는 사람은 직원일지라도, 안전을 경영의 우선순위로 만들 책임은 결국 최고경영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중대재해 예방은 문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리더십을 세우는 일입니다. 안전은 담당 부서에 맡겨둘 업무가 아니라, 경영자가 직접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경영 전략입니다.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조직에서는 아무리 많은 규정과 점검표를 갖추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중대재해와 안전보건을 규제 대응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경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현장을 바꾸고, 그 현장이 결국 기업과 구성원 모두를 지키게 됩니다.

오늘도 모든 현장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안전이 누군가의 업무가 아니라,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Insight

중대재해는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책임은 경영에서 시작됩니다. 안전은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입니다.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공정거래법 준수는 임원의 책임

2025년 한 해 동안 공정거래위원회가 단행한 고액의 과징금 부과 처분들은 기업 경영에 있어 컴플라이언스 체계 구축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택지 개발사업 분야 등에서 발생한 계열사 간 부당 지원 행위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그리고 고질적인 담합 행위에 대해 사법 당국은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고액의 과징금은 단순히 법인의 직접적인 재무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자금 유동성을 즉각적으로 잠식하며 대외 신인도 하락과 주주 가치 훼손이라는 치명적인 연쇄 리스크를 발생시킵니다. 나아가 현대 경영 환경에서는 위법 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경영진의 내부통제 및 감시 의무 소홀에 대한 법적 책임론이 매우 무겁게 다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이사회가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거나 사내의 조직적인 위법 행위를 방지하지 못했을 경우,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을 근거로 한 주주대표소송 리스크에 직면하게 됩니다.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임원 개인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경영진은 리스크 헤지 수단인 임원책임보험의 담보 조건을 철저히 재점검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임원책임보험은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소송 비용과 손해배상금을 담보하지만, 공정거래법 위반과 같이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위법 행위, 혹은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 등은 면책 조항에 해당하여 보상 범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즉, 보험에만 의존하기 전에 실질적인 리스크 차단 능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올해의 규제 동향이 제시하는 인사이트는 명확합니다. 사후 수습 방식의 소극적인 대응이나 규제 당국의 조사를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식 관리는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기획에서 마케팅, 영업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공정거래 위반 요소를 선제적으로 스크리닝할 수 있는 상시적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준법 의지와 결합하여 하나의 기업 문화로 내재화해야만 거대한 규제 리스크로부터 자산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는 12월의 세밑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는 겨울철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독감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이 크게 유행하는 계절입니다. 격무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되기 쉬운 때인 만큼 각별히 건강 관리에 유의하시어 안전하고 평안한 연말을 도모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일구어내신 소중한 결실들을 뜻깊게 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를 건강하게 맞이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대형 건설공사 중대재해의 반복, 경영자의 책임으로

건설업계는 매년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기술적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형 건설공사 현장의 중대재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주요 대형 건설현장의 사고 사례를 심층적으로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와 향후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나아가야 할 인사이트를 상세히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기 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 사례의 경우, 세종에서 안성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교량 구조물이 무너져 내려 작업자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해당 사고의 정밀 조사 결과, 교량을 받치는 가설 구조물의 지지 상태가 설계 기준에 미치지 못할 만큼 불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가해지는 수직 및 수평 하중에 대한 역학적 검토가 미흡했고, 시공 단계에서의 실시간 변위 계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형 토목공사에서 공기 단축을 위해 기초적인 가설 공정을 소홀히 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공학적 실패 사례입니다.

부산 기장군 리조트 신축 현장 대형 화재 사고는 대규모 건축 현장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리조트 신축 공사 현장의 하층부에서 진행되던 용접 및 용단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인근에 적재되어 있던 우레탄폼과 단열재 등 가연성 자재에 튀면서 순식간에 화재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상층부에서 마감 작업을 하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화재 감시인이 지정되어 있었으나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소화 기구의 배치나 작업 구역 분리 등 기본적인 화재 예방 수칙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대형 현장에서 공정 간 간섭과 위험 요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극명하게 입증한 사례입니다.

경기 광명 지하철 터널 붕괴 사고는 수도권 광역철도망 구축을 위한 신안산선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터널 내부 구조물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하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매몰되어 사망했습니다. 해당 구간은 사전 지질 조사에서 연약 지반으로 분류되어 철저한 보강 공사가 선행되어야 했으나, 무리하게 굴착 공정을 강행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더욱이 사고 발생 수일 전부터 지하수 유출과 막장면의 미세 균열 등 붕괴 징후가 포착되어 현장 안전점검에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주체들이 이를 묵인하고 작업을 지속한 정황이 밝혀져 인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2025년의 아픈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첫 번째로 도출되는 인사이트는 재래형 사고의 반복과 기본 수칙의 부재입니다. 첨단 스마트 안전 장비와 AI 기반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현장에 도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생하는 대형 사고의 상당수는 붕괴, 화재, 추락 등 지극히 기본적인 안전 조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화려한 기술 도입보다 현장의 가장 기초적인 공학적 안정성 검토와 수칙 준수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도급 및 외주화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 및 공공기관 발주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의 절대다수가 수급업체나 외주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구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청사가 구축한 엄격한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하도급 단계의 실질적인 작업 환경까지 유기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원청의 책임을 단순히 서류상의 서명이나 관리 감독 형태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하청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밀착형 관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제적 위험성 평가의 내실화와 실질적인 작업중지권 보장이 필요합니다. 지반 약화나 구조물 변형, 가연성 물질의 혼재 등은 시공 전후의 정밀한 위험성 평가를 통해 충분히 예측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입니다. 정형화된 서류 작성용 위험성 평가에서 벗어나, 당일 작업의 위험 요소를 현장 근로자가 명확히 인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근로자가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때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즉각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제도로서 완벽히 기능할 때 비로소 대형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안전은 타협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의 최우선 가치임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