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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처서,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불길

어마어마했던 여름, 그래도 "올해가 가장 시원한 해였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오늘이 처서(處暑)라고 하니,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조금씩 숨통이 트이겠지요. 절기라는 게 참 신기해서, 달력 위의 글자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제 더위는 한풀 꺾이겠지" 하고 안도하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유럽은 지금, '불의 괴물'과 싸우는 중입니다

지난 7월 말, 프랑스와 스페인은 역대 최악의 산불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 지역에서는 며칠 새 파리 면적의 몇 배에 달하는 산림이 불탔고, 스페인 마드리드 서쪽 아빌라 지역의 피해 규모는 스페인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두 나라를 합쳐 30만 명이 넘는 주민과 관광객이 긴급 대피했고, 스페인은 국가비상사태를, 프랑스는 군 병력까지 투입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더 무서운 건 이것이 '일회성 재난'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산불이 채 진화되기도 전에 다시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찾아왔고,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아열대성 고온 건조한 공기가 화재 진압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시민보호청장은 이 상황을 두고 "우리는 '불의 괴물'과 싸우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기후 리스크의 얼굴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폭염과 산불, 이제는 '남의 나라 뉴스'가 아닙니다

담당자님께 이 소식을 전해드리는 이유는, 이 현상이 머잖아 전 세계적인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리스크 관리자의 시선으로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짚어야 할 지점이 보입니다.

1. 공급망 및 물류 리스크 남유럽의 도로 통제와 공항 운영 차질은 이미 국내 항공·물류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유럽에 생산기지나 물류 거점, 협력업체를 두고 계신 기업이라면 공급망 중단(Contingent Business Interruption) 리스크를 다시 점검해보실 시점입니다.

2. 재산 및 기업휴지 담보의 재해석 전통적으로 화재보험 언더라이팅은 특정 지역·계절의 통계에 기반해왔습니다. 그런데 폭염과 가뭄이 겹치며 화재 위험도의 지리적 경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해외 사업장의 재산종합보험(Property All Risk)과 기업휴지보험(Business Interruption) 담보 조건, 특히 자연재해 관련 면책 및 한도를 재확인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3. 환경책임 및 배상책임 리스크 산불로 인한 재산·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인접 부지의 관리 주체나 사업장에 화재 발화·확산 책임이 제기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환경책임보험과 일반배상책임보험의 담보 범위를 함께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4. 기후리스크 공시와 D&O 지난 편지에서 다뤄드렸던 ESG 거버넌스 리스크와도 맞닿는 지점입니다. 기후 관련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에 대한 이사회의 대응과 공시 수준이 향후 주주대표소송이나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무엇을 점검하시면 좋을까요

  • 해외 사업장·물류 거점의 소재지별 자연재해 익스포저 재평가
  • 재산종합보험·기업휴지보험의 자연재해 관련 담보 한도 및 면책 조건 확인
  • 핵심 협력업체의 공급망 중단 리스크 및 CBI 담보 여부 점검
  • 기후 물리적 리스크에 대한 이사회 차원의 대응 체계 및 공시 준비 상황 점검

폭염과 산불 뉴스를 접하며, 저는 처서라는 절기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미리 읽고 준비하며 살아왔습니다. 리스크 관리도 결국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길이 국경을 넘어오기 전에, 우리도 미리 대비의 계절을 준비해야겠지요.

다음 편지에서는 이 기후 리스크가 국내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및 내부통제 체계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남은 여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2026년 8월 16일 일요일

대비하지 않은 리스크는 다음 계절까지 이어진다

어제는 광복절이었습니다. 태극기가 걸린 거리를 지나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셨던 분들도 계셨을 텐데요, 연휴 내내 이어진 늦더위 탓에 창밖 태극기보다 에어컨 온도계를 더 자주 들여다보신 분들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광복절 연휴 동안 사무실 냉방 걱정과 협력업체 물류 지연 문의를 동시에 챙기며, 올여름 더위가 단순한 계절 현상 이상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통계와 현장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이번 폭염은 이미 '경제 변수'로 자리 잡은 모습입니다. 장기간 이어진 고온은 농축수산물 생산과 공급에 차질을 주며 먹거리 물가를 다시 자극하고 있고, 냉방비 부담과 소비 패턴의 이동, 노동생산성 저하까지 동시에 유발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에서는 외출과 조리를 줄이려는 수요가 온라인 장보기와 가정간편식으로 옮겨가는 반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체감경기는 뚜렷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지난달 소상공인 체감 BSI는 전월 대비 8포인트 가까이 하락했고, 전통시장의 판매실적과 방문객 수 지수도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이 흐름은 제조·판매·유통업을 운영하시는 담당자님들께 몇 가지 구체적인 리스크 점검 포인트를 던져줍니다.

1. 생산 및 공급망 차질 원재료(특히 농축수산물) 조달 지연과 품질 저하는 제조 라인의 가동률과 납기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협력사의 생산 중단이 자사의 매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업휴지보험(BI)의 담보 범위에 협력업체 리스크(CBI, Contingent Business Interruption)가 포함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실 시점입니다.

2. 냉장·냉동 유통 리스크 폭염기 물류 과정에서의 온도 이탈은 재고 손실과 제품 변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냉동·냉장 화물에 대한 운송보험 특약, 그리고 변질된 제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었을 경우의 제조물배상책임보험(PL) 담보 한도를 함께 점검해 두시길 권해드립니다.

3. 소비 채널 변화에 따른 매출 변동성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흐름은 유통업 전반의 매출 구조를 흔들 수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 비중이 늘어난다면, 사이버 리스크(개인정보 유출, 결제 시스템 장애)에 대한 담보도 함께 재점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4. 현장 근로자 온열질환 리스크 생산직·물류직 근로자의 온열질환 산재는 인적 손실은 물론 사용자 배상책임(근재보험, EPLI) 이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폭염특보 발효 시 옥외작업 제한과 휴식시간 준수 등 안전보건 조치가 실제 현장에서 이행되고 있는지, 서류상 매뉴얼과 현장 운영 사이의 간극은 없는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번 폭염은 언젠가 물러가겠지만 이 여름이 남긴 리스크 관리의 숙제는 다음 시즌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급망과 재고, 그리고 사람을 함께 지키는 보험 프로그램인지 이번 기회에 함께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