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바비는 잘 견디셨는지요. 강풍과 비가 몰아칠 땐 눈에 보이는 피해에만 신경이 쏠리지만, 정작 태풍이 지나간 뒤에야 지붕의 실금이나 배수구의 막힘 같은, 미리 손봤어야 할 약한 지점들이 드러나곤 합니다. 조직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평소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팀이, 어느 순간 신고 한 건으로 그동안 쌓여 있던 균열을 드러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오늘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이것이 왜 결국 경영진의 책임 문제로 번지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고는 늘고 있는데, 신고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노동청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 6,373건으로 전년 대비 20% 넘게 늘었고, 5년 전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신고의 '내용'입니다. 팀 간식을 나누지 않았다거나 상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는 식의 감정적 갈등은 물론, "보고서를 다시 보완해 오라"거나 "결론부터 말하라"는 정당한 업무 지시조차 괴롭힘으로 신고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신고들이 처리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개선 조치나 과태료, 송치로 이어진 건은 전체의 8.2%에 불과하고, 법 위반이 없다고 종결된 사건도 31%에 달합니다. 즉 상당수는 결과적으로 '괴롭힘이 아니었다'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신고가 접수되고 조사가 진행되는 그 과정 자체에서, 피신고인의 평판과 조직 내 신뢰는 이미 손상을 입습니다. 감독관 한 명이 수십 건을 동시에 처리하는 현실에서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 위주로 결론이 나기도 하고, 정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는 맥락에 따라 판단이 크게 갈립니다.
왜 이 문제가 경영진의 책임으로 이어질까요
여기서 리스크 관리 담당자로서 강조드리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이슈는 더 이상 인사팀 선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자(회사)에게는 법적으로 괴롭힘을 예방하고, 발생 시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조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피해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회사의 관리 체계 자체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 관리 체계를 설계하고 승인한 것은 결국 경영진입니다. 조사 절차가 미비했거나, 반복적인 신고에도 구조적 개선을 하지 않았거나, 조직문화 리스크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임원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주장하는 소송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주나 이해관계자가 조직문화 관리 실패를 이유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도 국내외에서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즉, 개별 신고 한 건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관리해왔는가"라는 시스템 전체가 심사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 짚어보실 부분
몇 가지 점검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첫째, 신고·조사 프로세스의 문서화입니다. 접수부터 조사, 조치, 사후관리까지 각 단계가 명확히 기록되어야 합니다. 이는 향후 분쟁 발생 시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둘째, 외부 전문가 조사의 활용입니다. 사내 조사만으로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사안이 민감하거나 경영진이 관련된 경우일수록 외부 자문을 통한 조사가 리스크를 줄여줍니다.
셋째, 보험 커버리지 점검입니다. D&O(임원배상책임보험)는 조직문화 관리 실패로 인한 경영진 개인 책임을 방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여기에 더해 고용관행배상책임보험(EPLI, Employment Practices Liability Insurance)을 함께 검토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PLI는 괴롭힘, 차별, 부당해고 등 고용 관련 청구에 특화된 담보로, D&O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합니다. 두 담보의 경계와 중복 여부를 언더라이팅 단계에서 명확히 정리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관리자 교육입니다. 정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자체가 관리자에게는 리스크입니다. 구체적인 사례 기반 교육을 통해 관리자 스스로 리스크를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 사전 예방의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미리 점검해두지 않은 배수구가 뒤늦게 말썽을 부리듯, 조직문화 리스크도 평소에 정비해두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순간 큰 손실로 돌아옵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다음 편지에서는 이 흐름과 이어지는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관련 담보 이슈를 다뤄보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라며,
한줄 인사이트
괴롭힘 신고의 8할은 '무혐의'로 끝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손상된 신뢰와 평판은 소송으로 되돌아옵니다 — 조직문화 관리는 이제 인사 이슈가 아니라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