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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5일 토요일

계약서는 방패가 되지 못했다: 역삼동 주차장 철거 사고가 남긴 것

2024년 3월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기계식 주차장 철거공사 현장에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노동자 한 분이 지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지난 2026년 8월 18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는 원청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죄 등의 혐의로, 사업부장을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등의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피의자가 구속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사고 이후입니다. 원청은 노동청 조사에서 계약의 형태가 '공동수급'이므로,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는 '도급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원청이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었고, 그 업체가 다시 고인이 속한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류의 이름은 공동수급이었으나 일의 흐름은 도급이었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계약의 명칭은 책임의 소재를 정하지 못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자에게 의무를 묻습니다. 계약서의 제목을 바꾸어 책임을 덜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둘째, 사고 이후의 대응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리스크입니다. 사고는 과실의 영역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대로라면, 사실과 다른 해명은 의도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위기 대응의 첫 원칙이 왜 정직이어야 하는지를 이 사건이 보여줍니다.

셋째, 위험은 하도급 단계를 따라 아래로 흐르지만 책임은 위로 거슬러 올라옵니다. 철거라는 고위험 공정, 재하도급, 그리고 그 맨 끝에 선 외국인 노동자. 원청이 현장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보고 있지 않았다면, 무엇을 관리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보험의 자리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이나 기업중대사고 배상책임보험은 민사상 배상과 방어비용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과 벌금은 누구에게도 전가되지 않습니다. 보험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가 작동한 뒤에도 남는 위험을 다루는 수단입니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으며, 유무죄는 재판에서 가려질 일입니다. 다만 기소 단계에서 이미 드러난 교훈은 있습니다. 책임을 나누는 계약서보다 위험을 줄이는 현장이 먼저라는, 오래되고 단순한 사실입니다.

출처: MBC 뉴스, 2026년 8월 18일 보도


2026년 7월 25일 토요일

2026년 상반기 대형 건설사 중대재해 현황

1. 사고 사례

① P건설 — 신안산선 복선전철 3-2공구 (서울 관악구), 2026.6.9.
케이블 트레이 설치를 위한 개구부 확장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35세 노동자가 약 15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신안산선 공사현장에서 P건설 시공 구간의 사망사고로는 최근 1년여 사이 세 번째였습니다.

② D건설 —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2026.5.25.
현장 내 드럼(D-230202) 설비 내부 최하단부에서 작업자 1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망자는 사고 원인 확인을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던 D건설 소속 안전관리자였으며, 밀폐공간 안전수칙 준수 여부가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③ H건설 — 같은 샤힌 프로젝트 PKG1 구간 (울산 울주군 온산읍), 2026.6.26.
지하 전선보호구조물 설치 구간에서 거푸집을 해체하던 협력업체 소속 54세 근로자가 약 1톤 규모의 토사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D건설 사고로부터 약 한 달 만에, 같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두 번째 사망사고였습니다.

2. 법인의 손실

P건설

  • 서울관악지청이 케이블 트레이 설치작업 일체에 대해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렸습니다.
  •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고용노동부가 P건설 본사 및 전국 시공현장에 대한 기획감독에 착수했습니다.
  • 국토교통부 장관이 "위법 확인 시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향후 행정처분 가능성이 공개적으로 거론되었습니다.
  • 이미 '부정적' 전망을 받고 있던 회사채 신용등급에 하향 압력이 가중되었습니다.

D건설

  •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현장 확인·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 사고 구역 일대 밀폐공간 작업이 전면 중단되어 이달 초에야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 애초 익월 준공 예정이던 공정 일정에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 고용노동부는 발주처(에쓰오일)와 시공 컨소시엄 전반의 안전관리체계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어, 조사 범위가 D건설 단독 사안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H건설

  •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지하 구조물 설치공사 일체에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렸습니다.
  •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 대표이사가 공개 사과를 표명했습니다.
  • 2026년 내 상업가동을 목표로 하던 공정 일정에 지연 우려가 제기되었으며, 이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짧은 기간 두 건의 중대재해가 같은 사업장에서 반복되면서, 노동부가 H건설을 대상으로 별도의 감독 시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세 사고 모두 수사·행정 절차가 진행 중인 단계로, 벌금이나 손해배상금 등 금전적 손실의 구체적 액수는 현재까지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3. 경영자 개인의 손실

  • P건설: 2025년 8월 연이은 중대재해 책임으로 물러난 전임 대표의 후임으로, '안전 역량 강화'를 명분 삼아 CSO 출신 사장이 취임했습니다. 취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같은 시공 구간에서 사고가 재발하면서, 취임 명분 자체가 흔들리는 리더십 위기에 놓였습니다.
  • H건설: 대표이사가 사고 이후 공개 사과를 표명했으나, 사과 이후 약 한 달 만에 같은 현장에서 두 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재발방지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원청 경영진에 대한 형사책임 적용 가능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 D건설: 현재까지 확인된 범위에서는 대표이사 개인 차원의 공개 대응이나 인사조치는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 세 회사 모두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현재로서는 확정된 개인 벌과금·실형·손해배상 판결은 없습니다.

4. 리스크관리 인사이트

사고 원인의 특징
세 사고 모두 재해예방이 상대적으로 익숙한 기본 공정(개구부 작업, 밀폐공간 작업, 거푸집 해체)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D건설·H건설 사고는 같은 초대형 컨소시엄 현장(샤힌 프로젝트)에서 한 달 간격으로 반복되었고, P건설 사고 역시 같은 노선 공사에서 유형을 달리하며 되풀이되었습니다. 이는 개별 작업자의 부주의보다, 원·하청 간 위험정보 공유 체계와 현장 안전관리 체계 자체의 구조적 공백을 시사합니다.

예방 관점의 점검 포인트

  • 다수 시공사가 참여하는 컨소시엄 현장에서는 원청별 안전기준의 통일성과 상호 정보공유 체계를 우선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개구부·밀폐공간 등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작업유형에 대해서는 표준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공정 착수 전 필수 확인 절차로 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사고 직후 수립한 재발방지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일정 주기로 재점검하는 절차가 요구됩니다.

보험프로그램 점검 팁

  • 컨소시엄 시공 현장의 경우, 원청·시공사 간 배상책임 분담 구조가 보험 담보 범위와 실제로 일치하는지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 반복적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 대한 수사·기소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임원배상책임보험(D&O)의 형사방어비용 특약 담보 여부와 한도를 점검할 시점입니다.
  • 작업중지명령에 따른 공기 지연 손실에 대비해, 건설공사보험(CAR) 상 공사지연비용 관련 특약의 보장 범위를 확인해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026년 6월 13일 토요일

중처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묻는다

오늘은 유난히 무더운 날입니다. 장마철 특유의 습한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늘도 많은 분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발생했던 광주 대표도서관 신축공사 붕괴 사고의 최근 사법처리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공사의 경영자를 비롯해 4명이 구속되고, 모두 40명이 입건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 자체도 참담하지만, 문득 그들의 가족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장이 구속되고, 가족들은 언론의 관심과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고는 기업과 경영자, 그리고 가족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안전관리자를 향한 법이 아닙니다. 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묻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안전을 실천하는 사람은 직원일지라도, 안전을 경영의 우선순위로 만들 책임은 결국 최고경영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중대재해 예방은 문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리더십을 세우는 일입니다. 안전은 담당 부서에 맡겨둘 업무가 아니라, 경영자가 직접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경영 전략입니다.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조직에서는 아무리 많은 규정과 점검표를 갖추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중대재해와 안전보건을 규제 대응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경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현장을 바꾸고, 그 현장이 결국 기업과 구성원 모두를 지키게 됩니다.

오늘도 모든 현장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안전이 누군가의 업무가 아니라,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Insight

중대재해는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책임은 경영에서 시작됩니다. 안전은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입니다.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대형 건설공사 중대재해의 반복, 경영자의 책임으로

건설업계는 매년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기술적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형 건설공사 현장의 중대재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주요 대형 건설현장의 사고 사례를 심층적으로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와 향후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나아가야 할 인사이트를 상세히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기 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 사례의 경우, 세종에서 안성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 구간에서 교량 구조물이 무너져 내려 작업자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해당 사고의 정밀 조사 결과, 교량을 받치는 가설 구조물의 지지 상태가 설계 기준에 미치지 못할 만큼 불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가해지는 수직 및 수평 하중에 대한 역학적 검토가 미흡했고, 시공 단계에서의 실시간 변위 계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형 토목공사에서 공기 단축을 위해 기초적인 가설 공정을 소홀히 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공학적 실패 사례입니다.

부산 기장군 리조트 신축 현장 대형 화재 사고는 대규모 건축 현장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리조트 신축 공사 현장의 하층부에서 진행되던 용접 및 용단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인근에 적재되어 있던 우레탄폼과 단열재 등 가연성 자재에 튀면서 순식간에 화재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상층부에서 마감 작업을 하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화재 감시인이 지정되어 있었으나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소화 기구의 배치나 작업 구역 분리 등 기본적인 화재 예방 수칙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대형 현장에서 공정 간 간섭과 위험 요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극명하게 입증한 사례입니다.

경기 광명 지하철 터널 붕괴 사고는 수도권 광역철도망 구축을 위한 신안산선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터널 내부 구조물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하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매몰되어 사망했습니다. 해당 구간은 사전 지질 조사에서 연약 지반으로 분류되어 철저한 보강 공사가 선행되어야 했으나, 무리하게 굴착 공정을 강행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더욱이 사고 발생 수일 전부터 지하수 유출과 막장면의 미세 균열 등 붕괴 징후가 포착되어 현장 안전점검에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주체들이 이를 묵인하고 작업을 지속한 정황이 밝혀져 인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2025년의 아픈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첫 번째로 도출되는 인사이트는 재래형 사고의 반복과 기본 수칙의 부재입니다. 첨단 스마트 안전 장비와 AI 기반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현장에 도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생하는 대형 사고의 상당수는 붕괴, 화재, 추락 등 지극히 기본적인 안전 조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화려한 기술 도입보다 현장의 가장 기초적인 공학적 안정성 검토와 수칙 준수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도급 및 외주화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 및 공공기관 발주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의 절대다수가 수급업체나 외주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구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청사가 구축한 엄격한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하도급 단계의 실질적인 작업 환경까지 유기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원청의 책임을 단순히 서류상의 서명이나 관리 감독 형태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하청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밀착형 관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제적 위험성 평가의 내실화와 실질적인 작업중지권 보장이 필요합니다. 지반 약화나 구조물 변형, 가연성 물질의 혼재 등은 시공 전후의 정밀한 위험성 평가를 통해 충분히 예측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입니다. 정형화된 서류 작성용 위험성 평가에서 벗어나, 당일 작업의 위험 요소를 현장 근로자가 명확히 인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근로자가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때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즉각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제도로서 완벽히 기능할 때 비로소 대형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안전은 타협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의 최우선 가치임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