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2일 토요일

리콜은 줄었는데 리스크도 줄었을까: 2026년 상반기 유럽 리콜 데이터 읽기

2026년 상반기 EU와 영국 규제당국이 집계한 제품 리콜은 총 7,115건입니다. 전년 동기 7,729건보다 7.9% 줄어든 수치로, 세지윅(Sedgwick)의 유럽 리콜 인덱스가 전하는 첫 번째 숫자입니다. 표면만 보면 유럽 시장의 제품 안전 환경이 안정되고 있다고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역을 들여다보면 결론은 달라집니다.

감소의 실체: 한 범주, 한 가지 위험

전체 감소폭은 614건인데, 소비재 한 범주에서만 723건이 줄었습니다(2,892건 → 2,169건, 25.0% 감소). 소비재를 제외한 자동차, 식음료, 의료기기, 의약품의 합계는 4,837건에서 4,946건으로 오히려 109건 늘었습니다.

소비재의 감소도 구조적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학물질 단독 위험으로 분류된 리콜이 1,550건에서 734건으로 줄었고, 이탈리아의 통보 건수가 954건에서 265건으로 급감했습니다. 특정 위험 유형과 특정 통보국의 변동이 전체 통계를 끌어내린 셈입니다. 소비재 2,169건은 여전히 지난 12년 중 두 번째로 높은 상반기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젤 네일 폴리시 리콜은 2건에서 170건으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전부 화학물질 문제였습니다. 한 품목이 반년 만에 리콜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은 총량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자동차: 12년여 만의 최고치

자동차 리콜은 393건에서 445건으로 13.2% 증가했습니다. 1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반기 수치이며, 같은 기간 상반기 평균인 267건을 크게 웃돕니다. 부상 위험이 331건으로 가장 많았고, 화재 위험은 82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차종별로는 승용차가 251건이었습니다.

통보국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영국은 142건에서 223건으로, 프랑스는 49건에서 94건으로 늘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146건에서 100건으로 줄어 10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전자제품과 완구: 화재와 질식

전자제품 리콜은 534건으로 지난 12년 중 가장 많았습니다. 감전 위험이 214건으로 1위였으나, 더 주목할 항목은 화재입니다. 화재 단독 위험은 90건에서 126건으로 40.0% 늘어 12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기자전거 리콜 25건 가운데 17건이 화재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완구 리콜도 446건으로 5.9% 늘어 12년 내 최고 수준입니다. 질식 위험이 152건에서 194건으로 증가했고, 봉제완구 112건 중 78건이 질식 위험에 해당했습니다. 석면 오염으로 인한 건강 위험 리콜도 23건 있었습니다.

의류는 119건에서 62건으로 47.9% 줄어 5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화학물질과 환경 위험이 결합된 리콜은 5건에서 14건으로 늘었고, 상당수가 REACH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식음료: 세균성 오염의 증가

식음료 리콜은 2,710건으로 7.6% 증가했습니다. 최대 원인은 비세균성 오염(1,091건)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그중 아플라톡신이 194건이었습니다.

변화는 세균성 오염에서 나타났습니다. 481건에서 596건으로 늘었으며, 살모넬라가 415건, 리스테리아가 88건, 대장균이 48건이었습니다. 품목별로는 과일·채소류가 484건에서 598건으로 증가했고, 이 가운데 농약 오염이 110건, 오크라톡신 오염이 101건이었습니다. 이물질 혼입은 172건으로, 플라스틱 38건, 금속 36건, 유리 31건 순이었습니다.

의료기기와 의약품: 총량은 줄고 제조 품질 문제는 늘고

의료기기 리콜은 1,620건으로 6.3% 줄어 3년 내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기기 고장은 225건에서 328건으로 늘어 5년 내 최고치였고, 제조 결함은 150건에서 311건으로 두 배를 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문제도 282건에 달했습니다.

의약품도 같은 양상입니다. 전체 리콜은 197건에서 171건으로 13.2% 줄었으나, 제조 오류로 인한 리콜은 7건에서 31건으로 343% 증가했습니다. 두 산업 모두 총량은 감소했지만 제조 공정에서 비롯된 리콜은 급증했습니다.

규제 환경: 숫자 뒤에서 움직이는 것들

리콜 통계와 함께 규제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EU는 7월 1일부터 새 철강 조치를 시행해 무관세 쿼터를 연 1,830만 톤으로 정하고, 초과 물량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습니다. 같은 날 EU·미국 무역 합의의 틀도 발효되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대부분 품목에 대한 미국 관세 상한이 15%로 설정되었습니다.

영국은 20년 만에 일반제품안전규정(GPSR 2005)의 전면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개편안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도 위험 제품의 예방, 식별, 제거 의무를 부과하고, 공급망 참여자 전반에 모니터링과 문서 보존 책임을 지웁니다.

EU는 AI법상 고위험 시스템의 적용 시점을 당초 2026년 8월 2일에서 미뤘습니다. 고용, 신용평가 등 지정 분야는 2027년 12월 2일, 완구나 의료기기 같은 규제 제품에 내장된 시스템은 2028년 8월 2일입니다. 의류 업계에는 7월 19일부터 대기업의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읽어야 할 것

이번 데이터의 결론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총량 지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전체 리콜은 줄었지만 자동차, 전자제품, 완구는 12년 내 최고 수준이고 식음료도 늘었습니다. 자사가 속한 범주와 위험 유형을 따로 떼어 보아야 합니다.

둘째, 화재와 제조 결함이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화재 리콜이 나란히 최고치를 기록했고, 의료기기와 의약품에서는 제조 기인 리콜이 급증했습니다. 이 유형은 회수 범위가 넓고 배상 규모가 커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생산물배상책임보험과 리콜 비용 담보의 한도, 면책 조항을 다시 점검해 볼 시점입니다.

셋째, 책임이 공급망 전체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개편안과 EU의 각종 추적성 요건은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사와 플랫폼까지 책임 주체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리콜 대응 계획, 공급업체 계약상의 책임 분담, 문서 관리 체계를 사전에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는 사고가 난 뒤에 드러납니다.

리콜 건수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리스크가 줄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